2023년에 썼던 글.
식당 창업을 하면서 사용할 쌀은 내가 주장해온 맛있는 쌀인 소식재배.
용의 눈동자+고시히까리 두 품종을 혼합한 것이다. 물론 두 품종 모두 소식재배다. 말한대로, 글로 쓴 그대로 밥심을 위한 식당을 엽니다.
#칠흑 #coming_soon
맛있는 밥을 먹은 기억이 있나? 반찬까지가 아니라 그냥 밥만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은 “글쎄….”가 대부분일 것이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맛있게 먹은 기억은 많을 것이다. 같이 하는 이가 좋아서, 반찬이 맛있었기에, 장소가 맛없으면 안 될 것은 비싼 장소라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분명 좋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막상 ‘밥’ 하나만 따로 떼어 내서 생각해보면 답은 ‘없다’ 많을 듯싶다. 밥심으로 사는 민족임에도 밥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밥심으로 산다고는 하나. 정작 그 밥심이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밥이 맛없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쌀에서 힘이 빠졌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쌀은 저렴해야 한다는 명제에 시달렸다. 쌀 값이 오르지 않으니 맛보다는 수확량이 중요했다. 품질보다는 수확량과 수매량이 곧 돈이었다.수확량이 얼추 많이 나고 얼추 맛있는 품종을 심어야 수매를 해준다. 여기에 비료 조금 더 넣어주면 양이 많아진다. 이런 추세와 반대로 다시금 쌀알 하나 하나에 힘을 주는 농법이 ‘소식 재배’다. 모내기할 때 적게 심어 수확할 때 쌀알 하나하나가 옹골찬 쌀을 수확한다. 소식 재배는 지금보다는 맛있는 쌀을 재배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2016년 즈음이었다. 소개를 받아 골드퀸 3을 맛봤다. 지금은 다양한 브랜드로 나오지만 그때는 하나의 브랜드만 나왔다. 익히 알고 있던 반찹쌀계 품종에 향을 더한 쌀이었다. 밥맛이 아주 좋았다. 향도 좋았다. 강연이나 글로 기회가 될 때마다 널리 알렸다. 그다음 해에 맛을 봤다. 브랜드는 다양해졌는데 맛은 그때의 맛이 아니었다. 이유가 뭘까 고민했다. 산지가 달라져서 그러가 싶어 여러 곳의 쌀을 맛봐도 비슷했다. 산지를 다니는 것이 직업이다. 28년째 다니고 있다. 어느 지역에 가니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용은 플래카드답게 단순 명료했다. 권장 시비량을 준수하자는 단문이었다. 권장 시비량? 시비는 비료를 주는 행위를 말한다. 권장하는 시비를 지키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쉽게 설명하자면 비료 한 주먹 더 주면 쌀 몇 주먹이 더 생산할 수 있다. 비료를 준 만큼 양이 늘어난다. 모든 일에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양이 늘어나는 것이 밝음이라면 밥맛이 떨어지는 것은 어둠이다. 시비하는 양을 늘리면 밥맛에 시비 걸 일이 많아진다. 권장 시비량을 어기면 벼는 비와 바람에 대응하지 못하고 쉽게 쓰러진다. 전문 용어로는 ‘도복’이라 한다. 때를 따라서 성장해야 함에도 비료에 의해 성장이 빨라지니 병충해에 약해 농약이 필수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골드퀸의 미질 변화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게 심으면?” 그걸 행동으로 옮긴 것이 소식 재배다. 소식 재배는 말 그대로 모내기할 때 적게 심는 농법이다. 최대한의 생산량이 목표가 아닌 최대한 맛있는 맛이 목적인 농법이다. 모내기는 일반적인 것과 다르다. 80주 이상을 심는 것과 달리 40주 이하로 심었다. 모내기할 때 한 번 심는 모의 수는 대략 3~4개 소식 재배는 2개 이하다. 모내기한 논을 보면 일 대충 한 농부가 심은 듯 듬성듬성 이다. 듬성듬성한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논과 비슷하게 변모한다. 튼실하게 뿌리 내린 벼에서 분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분화는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가 올라오는 것을 말한다. 모내기를 관행처럼 하면 많은 상태에서 올라오니 논은 벼로 가득 찬다. 벼와 벼 사이 밀집도가 높아지니 공기 흐름에 있어 병목 구간이 많아진다. 반면 소식 재배한 논은 분화를 해도 간격의 여유가 있어 공기 흐름이 여유롭다. 땅이 가진 힘을 제대로 끌어 올리고 벼 사이사이 햇빛이 고르게 비추니 땅과 햇살로 자라는 벼가 튼튼할 수밖에 없다. 튼실한 벼에서 생산한 쌀은 힘이 좋다. 소식 재배한 쌀은 일반 모내기한 쌀에 비해 양이 적다. 양은 적으나 하나하나 쌀알의 무게는 더 나간다. 하나의 영양분을 둘로, 셋으로 나누어 가지기에 쌀이 맛없다. 최대 생산량을 위해 단위 면적 수확량이 중요했다. 지난 몇십 년 그랬던 것을 바꾸자는 것이 소식 재배다.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이 중요함을 알리는 재배다.
골드퀸 3을 알기 전에는 품종이, 소포장이, 도정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쿠팡 시절에도 단일 품종의 쌀만 팔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더 멀리는 2004년, 단일 품종만 취급할 것을 농협에 요구했고 그대로 초록마을 매장에서 팔았다. 이랬었고 이런 것이 맛있는 쌀을 사는 요령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 품종이 중요하지만 어떻게 재배하는가가 더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좋은 품종이라도 일반 모내기에 과량의 비료가 들어가는 순간 품종의 특성을 잃는다. 호품이라는 벼가 있다. 시험 재배에서는 고시히카리를 찜 쪄 먹을 정도의 미질을 자랑했다고 한다. 보급되는 순간 고품질이라는 품종 특성은 사라지고 다품종을 대표하는 품종이 되었다. 권장 시비량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쌀 맛이 궁금한가? 소식 재배 쌀을 구매하면 알 수 있다. “그래 이 맛이었어!” 잠시 잊고 있던 밥맛을 찾아 줄 것이다. 많은 수확보다는 맛있는 수확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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