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에서 좀 빼자!(수정 업로드)
1990년 대학 1학년, 서울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리어카에 쥐포나 번데기, 군밤 파는 장사꾼이 그때는 영화관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리어카에 올려진 여러 먹거리 중에서 눈에 띈 게 눌러서 얇게 말린 검은빛 진한, 문어 다리라 팔던 것에 대한 모양과 색은 30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는 그것을 문어 다리라 불렀고(지금도 가문어라 하는) 그런 줄 알았다. 궁금했지만 사 먹은 적은 없었다. 첫 직장이 백화점 식품부, 백화점에 근무할 때는 진미채를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국내산이 아닌 수입 오징어로 만든 진미채였다. 앞선 문어 다리라 팔던 것과 내가 판매하던 진미채가 관련이 없는 줄 알았다. 그저 칠레에서 수입한 정도만 알던,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르고 매출만 신경 썼다. 백화점을 퇴사하고 초록마을에서 산지를 다닐 때였다. 2000년 초중반으로 기억한다. 강원도 가는 길에 점심 시간, 인제 근방에서 황탯국을 주문했다. 반찬으로 오징어 젓갈이 나왔다. 젓가락으로 집으니 족히 30cm 정도 길이의 오징어 살이 젓갈 그릇에서 나왔다. 가공 과정에서 잘렸어야 하지만 그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때는 알았다. 커다란 오징어를 수입해서는 몸통은 진미채를, 다리는 가문어를, 그리고 귀때기(날개 지느러미)로는 오징어 젓갈의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을 말이다. 족히 1~2m되는 오징어 한 마리로 다양한 가공품을 만들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살오징어(횟집 수족관에서 보던 오징어)가 든 짬뽕 보기가 쉽지 않다. 오징어는 들어 있지만, 오징어 맛이 나지 않는 것이 짬뽕 그릇을 채우고 있다.
대부분 중식당에서 짬뽕을 주문하면, 오징어가 들어 있어도 오징어 맛이 나지 않는다. 짬뽕 건더기로 나오는 것을 보면 길고 얇은 모양으로 반듯하게 잘린 사각형 모양이다. 오징어라고 씹어보면 드는 생각은 먹을 수 있는 종이 정도. 맛을 내기 위해 여러 재료와 볶아 맛을 주던 오징어가 이제는 그저 건더기 양을 늘리기 위한 재료로 하락했다. 팥소 만들 때 양을 늘리기 위해 들어가는 팥보다 더 들어가는 타피오카 전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맛은 재료가 아니라 MSG와 변치 않는 향을 지닌 시즈닝으로 내면 그만이기에 더 그러는 듯싶다. 짬뽕에서 살오징어가 맛에 있어 차지하던 비중을 무시한 처사이다. 지금 이야기하는 오징어는 멕시코부터 시작해 아래까지 죽 이어진 해류, 훔볼트 해류에서 잡히는 오징어에 대한 이야기다. 훔볼트에서 잡히기에 오징어 이름 또한 훔볼트 오징어다. 대왕오징어로 잘 못 알려졌지만 대왕오징어는 15m까지 자라기에 겨우 몇 m 크는 훔볼트 오징어와는 급이 다르다. 훔볼트 오징어 또한 국내에서 잡히는 살오징어와는 크기가 비교 불가이기에 대왕 오징어라 부르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1990년대 초반, 국내산 오징어 가격이 오르면서 시선은 외국으로 자연스레 쏠렸다. 탐색하던 시선에 잡히면 버려지는 페루의 거대한 오징어가 걸렸다. 이 녀석은 그대로는 먹지 못했다. 부력을 위해 체내에 염화암모늄을 지니고 있다. 암모늄과 염소는 쓴맛과 신맛을 내기에 잡히는 족족 버렸다. 잘 활용하면 돈이 될 듯싶었기에 사람들이 모였다. 궁하면 통하는 법, 마침내 쓴맛과 신맛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았다. 완전한 제거는 아니고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껍질을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담그는 법, 초산염이나 인산염에 담가 중화시키는 법, 탄산나트륨을 활용하거나 염화나트륨 용액에 담가 제거하는 법 등을 활용했다. 쓴맛을 제거했으나 맛은 없다.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없을 무(無)다. 씹으면 먹을 수는 있지만 전혀 맛이 없었다. 이는 맛을 인위적으로 넣으면서 해결했다. 진미채는 설탕과 조미료와 소르비톨을 넣어 단맛, 감칠맛에 촉촉함을 더했다. 간혹 TV의 협찬을 했는지 30cm 자 모양의 커다란 오징어 튀김으로 변신한다. 젓갈은 숙성의 맛이 있어야 제맛이지만, 대충 절인 다음 조미료 넣고 비볐다. 몸통은 진미채, 오징어 귀는 젓갈로 사용했다. 문어 다리로 팔던 다리는 한동안은 가문어로 팔았다. 여기서 가는 가짜의 의미인 가(假)다. 가짜 문어를 참으로 우아하게 표현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것을 사보면 오징어 다리를 말렸을 뿐인데 과자 정도의 첨가물이 들어가 있다. 중화 과정을 거쳐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든 다음 다시 맛을 입힌다. 훔볼트 오징어로 만든 것 중에서 맛이 순한 것이 없다. 달고, 진득거리고, 맵거나 한다. 이는 남아 있는 쓴맛과 신맛을 가리기 위함이다.
한 번은 강진에 간 적이 있다. 한정식 먹기 위해 강진을 가기도 하지만 나는 만사 제쳐 놓고 분식점 오징어 튀김을 먹었다. 살오징어를 튀겨낸, 바삭 튀김옷을 깨물면 입에 확 퍼지는 오징어의 구수한 향, 이 맛에 오징어 튀김을 먹는다는 것을 다시금 알았다. 허영만 선생님 모시고 강진을 갔을 때 여기를 제일 먼저 모시고 갔었다. 물론 선생님도 만족하셨다. 전북 장수에 오일장 취재를 하러 갔다가 시장 옆 중식당에서 짬뽕을 먹은 적이 있다. 시골의 작은 중식당이지만 살오징어로 짬뽕을 내었다. 솔방울 모양, 긴 자 모양의 훔볼트 오징어가 아니 살오징어가 들어 있었다. 나온 모양새는 평범해 보여도 상상하는 짬뽕의 맛을 냈다. 맵지 않고 얼큰하면서 구수한 짬뽕 말이다. 오징어는 좋은 식재료다. 다만, 사용하는 곳에 따라 구별하면 더 좋다. 진미채야 조미료의 맛으로 먹는다지만 튀김이나 짬뽕에 아무 맛 없는 훔볼트 오징어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짬뽕 건더기에서 오징어의 맛, 조미료로 낼 수 없는 맛이 있다. 그 맛은 살오징어 아니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짬뽕에서 뭣이 중헌디 알면 물 건너온 훔볼트는 함부로 쓰질 않을 듯싶다.
#짬뽕 #5대짬뽕_누가? #훔볼트오징어 #위고동 #위소라
#음식 #음식강연 #음식인문학 #식품MD #식재료전문가 #오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