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식탁

시장 여행 종료

foodenjoy 2025. 2. 19. 08:37

 

제철맞은장날입니다. 오일장
세 권의 책으로 나왔다.

경향신문에 2019년 1월 23일, 인천 종합어시장을 소재삼아 시작했다. 2023년 12월, 최애 시장인 동해 북평장으로 끝을 낸 '지극히 미적인 시장'을 연재했었다. 연재를 끝내고도 홀로 다시 시장을 다니곤 했었다. 같은 시장도 매해 나오는 것이 달라지기에 매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 변화를 느끼고 싶어 그리 다녔다. 어제(2월 17일)는 경상북도 울진군에 다녀왔다. 올해가 시장 다닌 지 7년 째다. 어제의 시장 취재 또한 7년의 연속이었지만, 아쉽게도 당분간 시장 취재를 접는다. 시장 다니는 동안 남아 있던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출장이기도 했었다.

자연산 돌김
2023년 2월의 울진 김
울진장
2025년 2월의 울진김

남아 있던 아쉬움은 몇 년 전 울진장에서 샀던 돌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2년 전 이맘때 울진에 다녀왔다. 신문 기사로는 2023.2.23이니 아마도 비슷한 시기였을 듯. 시장을 4년 넘게 다녔기에 꼴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시기였다. 회사로 따지면 풋내기 대리 정도의 객기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전문가인양 대충 훑어보고 다니다 김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할매들이 갯바위를 다니면서 긁어모아서 만든 김이었다. 보통의 김 모양과 달리 긴 모양새였다. 값도 비싸 한 장의 천 원 꼴이었다. 열 장 묶음을 사서는 집에 와서 먹어보고는 땅을 치며 후회했던, 더 살 걸을 외치게 만든 김이었다. 맛있는 곱창김 맛을 알기에 크게 차이가 있겠나 싶어지만, 차이카 컸다. 그 이후로 다음 해 겨울에 두어 번 울진장을 찾았지만 김을 다시 살 수가 없었다. 시장 취재 한 7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고 아쉬움을 준 아이템이 동해 울진 바다가 내준 김이었다. 어제 출장 또한 2년 전 울진을 찾았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할매의 돌길을 사러 떠났다.

목적은 달성했다. 2년 전 내가 샀던 할매는 아니었지만 삼삼오오 몰려 있는 할매 중에서 김을 가지고 있던 할매가 있었다. 가격은 2년 전보다 비쌌다. 10장 묶음에 18,000원. 100장에 2~3만 원 하는 양식김과 비교하기 힘든 가격이지만 맛을 알기에 지갑이 자동으로 열린다. 김을 매일, 밥이나 김처럼 먹는 것이 아니라면 나를 위해 가끔 이런 비싼 것도 산다. 그래봐야 서울 시내에서 먹는 좀 비싼 밥 한 끼 가격이다.

지극히미적인시장
연재의 끝을 장식했던 동해 북평장

소원 풀이를 하고 후포항까지 갔다가 영덕에서 고속도로를 타지 않았다. 예전처럼 가고 싶어 울진 내륙을 관통해 집으로 왔다. 내비게이션 없던 시절, 전날 지도 검색은 필수였다. 고속도로는 어디서 빠지고 어느 곳에서 어디로 가면 대충 그 동네 도착하겠다는 나름의 설정을 했었다. 지금의 스마트폰 내비를 검색하 듯 그때는 전날 검색이 필수였다. 그리고 가다가 지도책을 봐야 했고 말이다. 이렇게 30년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전국 어디에서든 연어가 베링해에서 고향을 찾아 양양 계곡으로 회귀하듯이 나 또한 집으로 내비 없이 간다. 울진 후포에서 시작해 왕숙천 계곡을 타고 봉화로 가는 방향을 잡았다. 18년 전, 울진에서 매해 열리던 유기농 엑스포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지금처럼 도로망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서울에서 울진까지 6~7시간 정도 걸렸다. 부산보다 시간이 더 걸리던 시기였다. 그때 오갈 때 이 도로를 이용했던 기억이 잠시 스쳤다.

스치면서 지난 시장 취재를 다니면서의 기억 또한 잠시 머무다가 사라졌다. 맛밥이 좋았던 식당, 맛없던 곳, 재밌던 시장과 잼 없던 시장 또한 잠시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기억에 남는 곳은 그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 재밌는 시장으로는 제주 모슬포항에서 열리는 대정 오일장, 동해 북평장, 여수 서시장과 선어시장. 기대보다 못했던 보성 오일장이 생각이 났다.

하동 고하의 햄버거
기억에 남는 하동 고하의 햄버거

시장 취재는 여름에는 위로, 겨울이 오면 아래와 동쪽으로 갔다. 그래야 맛이 나는 농수산물과 만나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작아 보여도 나름의 작기라는 것이, 제철이라는 것이 있다. 더워지면 농산물을 지대가 높은 곳에서만 난다. 한여름 배추가 강원도 고지대에서만 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래서 여름이 오면 시장은 주로 강원도를 찾았다. 반대로 겨울이 오면 남쪽이난 동해의 바닷가를 찾았다. 먹거리로는 서산 시장의 호떡과 여수의 닭구이, 하동 고하의 햄버거, 삼척의 찰가자미 회가 맛있었다. 이번에 울진을 찾았을 때 죽변항에서 맛있게 먹은 식당을 찾았다. 잘 삭힌 식해와 조림이 맛있던 식당이었다. 일전에도 찾았다가 문을 닫아 먹지 못해 문 앞에 아쉬움을 두고 왔었다.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울진장을 찾았기에 문 앞둔 아쉬움이 생각나 찾았지만 이 아쉬움은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되었다. 문을 그날만 닫은 것이 아니라 폐업이었다. 임대 표시가 걸려 있었다.

 

재밌던 시장 취재였다. 가기 전 공부하고 다니면서 듣고 보고한 7년의 다채로운 경험이 나의 식재료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고 밑천이 되었다. 3월 초에 오픈하는 돼지국밥 또한 이러한 과정의 한 결과물이다. 국밥 오픈 이후 열게 될 식당들의 메뉴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생각해 둔 것들이다. 식당이 안정이 되는 순간 또 떠날 것이다. 아버지와 엄마가 내게 차고 넘치게 준 것이 역마살이다. 잠시는 머물 수 있어도 정착하기 힘든 복이 역마살이다. 역마살은 이렇게 쏘다녀야 직성이 풀린다. 전공이 식품공학이다. 전공대로 식품 공장이나 연구소에 갔으면 아마도 지금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다 내 복이다.

칠흑, 오픈 전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대표 흑돼지를 맛볼 수 있는 식당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 가양도 홈플러스 바로 옆이다.

시장 이야기는 2025년 2월 17일 울진장을 끝으로 잠시 멈추었다. 시간이 지나 지금 하고 있는 외식 일이 안정이 되면 캠핑카 타고 전국을 다닐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잠시 쉰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