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식탁
부산 충무동 새벽시장과 해안가 시장
foodenjoy
2025. 1. 21. 16:34
새벽시장은 재밌다. 어둠이 슬슬 여명에 밀릴 즈음이면 시장은 온갖 사연을 만들어내며 살아 움직인다. 원주, 전주, 강릉 그리고 창원 새벽시장은 시장의 재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기대를 하고 규모가 새벽시장답지 않게 제법 큰 부산 충무동 새벽시장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출장이 많은 관계로 고속도로 휴게소를 자주 이용한다. 이용해도 화장실 정도다. 휴게소의 비싸고 가성비 떨어지는 먹거리에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코로나 전에는 밤새 운전하다 보면 요깃거리라고는 휴게소 라면이 유일했다. 간혹 우동도 하는 곳도 있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에 저녁 8시면 문을 닫았다. 코로나가 끝나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코로나가 끝나도 밤이 오면 휴게소는 어둠에 잠겼다. 심지어 편의점마저 문 닫는 곳도 있다. 배려한다고 한강라면을 팔기도 하는데 셀프로 끓이기까지 하는데 4,000원이다. 휴게소 김치 잘 먹지도 않지만, 그것도 안 주면서 끓여주는 라면 가격과 같다. 휴게소 값어치 못한다는 것은 알지만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문 닫힌 휴게소 두어 군데 들리면서 부산까지 밤새 달려 충무동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전 5시 30분 정도. 시장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시장 구경에 나섰다.

여명은 아직이지만 바지런한 주부들은 손수레를 끌며 서둘러 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입은 자갈치 시장 방향, 충무동 해안가 시장이라는 커다란 아치가 서 있는 쪽으로 시장으로 들어갔다. 시장은 한창 장을 펴는 중으로 이미 손님을 받는 곳도 있다. 이쪽으로 진입하면 수산물이 먼저 반긴다. 수산물이 뭐가 있는지 보면서 앞쪽을 나아갔다. 삼거리에 다다르니 채소전이다. 과일은 보기 힘들지만, 채소는 도매와 소매를 병행하고 있었다. 박스 단위로 또는 작은 바가지에 담긴 체 손님과 흥정 중이었다.

채소전이 있는 쪽이 메인 거리인 듯싶었다. 통로가 넓고 사람이 많았다. 입구의 아치는 아까 봤던 해안가 시장을 알리는 아치보다 거대했다. 채소전 중간 통로는 특이한 명칭이 있다. 일명 김해 골목으로 김해에서 직송한 농산물과 반찬을 팔던 골목이었다고 한다. 김해 골목 입구에는 매생이, 물김을 비롯해 제철 맞은 미역까지 해초류를 판매했다. 특히나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물김이 있는 것이 특이했다. 새콤달콤 무쳐서 먹으면 맛있다. 무친 것을 따뜻한 밥과 비벼 먹어도 좋고 굴과 함께 김국을 끓여도 좋다. 개인적으로 김국을 추천한다. 진짜 맛있다.
충무동 새벽시장의 수산물 판매장은 소매 위주다. 자갈치 쪽을 보니 도매다. 생선을 박스 단위로 판다. 새벽시장의 장점은 저렴함과 신선함이다. 정치망을 털어서 나온 이나 목적어 대신 나온 온갖 고기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웃한 창원 새벽시장이 그랬다. 해남의 오일장 또한 그런 잔재미가 있었다. 그러한 것을 기대하기에는 충무동 새벽시장은 아니었다. 가격 묻기도 뭐한 선도의 생선이 눈에 자주 띄었다. 그나마 물이 좋아 보이는 것은 고등어와 나막스 혹은 은대구라 부르는 붉은 메기 정도였다. 붉은 메기를 사볼까 하다가 말았다. 탕이나 살짝 건조해서 구우면 꽤 괜찮은 반찬이 붉은 메기지만 이날 만큼은 당기지 않았다. 오일장 취재 6년 동안 처음으로 아무것도 사지 않은 장터였다. 물김도 좋았지만 빈약한, 물이 좋지 않은 수산물을 보다 보니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새벽시장과 자갈치 시장 중간에는 수구레 국밥 파는 식당이 여럿 몰려 있다. 이미 장사를 하는 듯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은 여기가 아닌 목적이 있어 용호동으로 이동했다.
부산하면 돼지국밥, 부산일보 보도로는 영업 중인 돼지국밥집이 7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동네마다 한두 개 이상은 있다는 이야기. 부산의 중심 서면에는 국밥 골목까지 있다고 한다. 골목마다 대장을 자처하는 식당이 꽤 있는 곳이 부산. 그 부산에서 미슐랭 뭐시기 인정을 받은 집이 있다고 해서 들러 봤다. 돼지국밥 하면 부산, 부산 돼지국밥 하면 수백(수육백반)이다. 국물에 고기를 넣지 않고 따로 고기를 내주는 메뉴다. 국밥이라는 메뉴는 1인 식사에 특화된 메뉴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물가가 올랐다는 이유로 1인분 식사는 한가할 때만 가능하고 수백은 2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한 곳이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가 되었다.


가이드 등재 이후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2인분 이상이나 혼밥 금지는 먹는 이를 배려하는 것이 아닌 쥔장의 상황에 대한 고려일 뿐이며, 바쁜데 뭐 한다고 1인 식사를 받겠냐는? 선언이다. 국밥의 정체성, 부산 돼지국밥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슐랭 가이드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부산 이후로 궁금함이 사라졌다. 참고로 맛있는 국밥집은 동네마다 있다. 맛집이라고 찾는 것은 그 동네 골목대장일 뿐이다. 5대니, 3대니 이런 숫자 놀음에 넘어가지 말자. 편하게 오가며 먹어야 제맛인 게 돼지국밥이다. 끝으로 돼지국밥에서 잡내 없어 좋다고 하는 이들은 다들 90년 전 이전의 글을 따라 하는 듯싶다. 도축장이 현대화되면서 고기의 잡내는 더는 나지 않는다. 고기 잡내라는 것은 곧, 고기가 상한다는 신호다. 도축부터 주방까지 진공포장의 냉장유통인지라 잡내가 날 틈이 없다. 잡내 없이 잘 삶았다는, 없는 잡내를 어찌 없앴는지 심히 궁금하다. 잡내가 난다는 것은 고기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식당 홍보용이라면 빼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홍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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